국내연구진, 반도체 내 양자 소용돌이 제어 기술 개발
국내연구진, 반도체 내 양자 소용돌이 제어 기술 개발
  • 박현진 기자
  • 승인 201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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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반도체 공진기 구조에서 ‘엑시톤-폴라리톤 응축’이라는 양자물질 상태를 형성 후 새 광학적인 방식으로 양자 소용돌이를 생성하고 제어하는 데 성공
사진은 양자 소용돌이 제어를 설명해주는 그림으로(A:퀘도각운동량, B:카이탈리티, C:안정성광학적) 제어에 따라 양자 소용돌이에서 양자화된 궤도 각운동량의 제어, 카이랄리티(손대칭성) 제어, 양자소용돌이 상태의 안정성 확인됐다(사진:논문 캡쳐, 본지편집)
 

KAIST는 물리학과 조용훈, 최형순 교수 공동 연구팀이 반도체 공진기 구조에서 ‘엑시톤-폴라리톤 응축’이라는 양자물질 상태를 형성 후 새 광학적인 방식으로 양자 소용돌이를 생성하고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태풍이 일거나 싱크대에서 물이 빠질 때 유체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회전하는 것은 익숙한 현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초유체, 초전도체 같은 양자 유체도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회전할 수 있는데, 이는 파동 함수의 위상(phase)이 소용돌이를 중심으로 원주율의 특정 배수가 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이렇게 소용돌이가 불연속적으로 양자화되는 현상을 양자 소용돌이라고 한다.

양자 소용돌이는 양자 유체역학을 연구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초유체의 에너지 손실 없이 회전할 수 있는 특성과 소용돌이의 회전 방향을 쉽게 뒤집을 수 없는 위상학적 안정성이 결합돼 있어 양자 소용돌이를 쉽게 생성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미래형 정보 소자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반도체 내부에 존재하는 양자 유체인 엑시톤-플라리톤(이하 폴라리톤)은 특히 유리하다. 반도체에 밴드갭(전도체의 가장 아랫부분의 에너지 준위와 가전자대의 가장 윗부분의 에너지 준위 간의 에너지 차이)보다 높은 에너지를 갖는 빛을 쬐면 전자-전공 쌍이 형성되고 서로 강하게 이끌리며 엑시톤을 형성한다.

이러한 반도체에 높은 반사율을 갖는 거울 구조의 공진기를 결합하면 빛(광자)과 물질(엑시톤)이 강하게 상호작용하며 빛, 물질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제3의 양자 물질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폴라리톤이라 한다.

엑시톤-폴라리톤 초유체와 양자소용돌이 상태의 생성
엑시톤-폴라리톤 초유체와 양자소용돌이 상태의 생성

폴라리톤이 일정 밀도 이상 모이면 마치 하나의 입자처럼 행동하는 폴라리톤 응축 상태를 띌 수 있는데 이 때 폴라리톤은 초유체의 특성도 갖게 된다. 다른 초유체와 달리 잘 정립된 반도체 공정 기술과 광학적 제어 기술이 결합돼 있고, 초유체 생성 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그 응용 가능성이 기대되는 물질이다.

연구팀은 광-펌핑(원자나 이온이 빛을 흡수해 낮은 에너지의 상태에서 높은 에너지의 상태로 변화하는 현상)을 위해 사용한 레이저의 궤도 각운동량을 제어해 반도체 물질 내에 양자 소용돌이의 방향과 개수를 손쉽게 조절할 방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공진 파장이 아닌 빛으로 기존 양자 소용돌이 생성을 위한 까다로운 실험조건을 극복했다. 이 결과는 고체 상태에서 광학적 방법을 이용한 미래형 정보 소자와 복잡한 양자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양자 시뮬레이터로의 활용 가능성을 높였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비공진 레이저의 궤도 각운동량이 폴라리톤의 기저 상태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밝힌 이번 연구 결과는 반도체 공진기 시스템에서 전자-정공 쌍의 에너지 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한 결과다.

한편 권민식 연구원과 오병용 박사가 공동 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물리학 권위지인‘피지컬 리뷰 레터스 (Physical Review Letters)’ 2월호에 게재됐다.

참고) 용어해설

반도체 마이크로 공진기: 조성이 다른 반도체 물질들을 번갈아 적층(반도체 이종 접합)한 구조를 이용하면 빛의 간섭현상을 조절하여 반사율이 높은 거울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하여 빛이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가둬둔 것을 반도체 마이크로 공진기라고 한다. 반도체 마이크로 공진기를 이용하면 거울 내부의 물질과 빛의 강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물리적으로 새로운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액시톤-폴라리톤 응축: 반도체 이종 접합을 이용하면 전자계를 2차원 평면에 구속시킬 수 있는데 이를 양자 우물이라고 한다. 양자 우물 안에 생성된 전자와 양공이 수소 원자와 같은 결합 상태를 만든 것을 엑시톤이라고 한다. 양자 우물을 반도체 마이크로 공진기 내부에 두어 엑시톤과 빛이 강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생성되는 새로운 종류의 준입자가 엑시톤-폴라리톤이다. 많은 숫자의 엑시톤-폴라리톤들이 임계밀도 이상에서 충분히 낮은 온도로 냉각하여 서로 상관관계가 커지면 대부분의 엑시톤-폴라리톤이 양자역학적 기저 상태에 응축되는 현상을 관측할 수 있는데, 이것이 엑시톤-폴라리톤 응축이다.

엑시톤-폴라리톤의 비공진 광펌핑 / 공진 광펌핑: 엑시톤-폴라리톤은 반도체 시스템 내부에서 정해진 광학적 에너지를 갖고 있다. 이 에너지와 정확히 같은 에너지의 레이저를 반도체에 주사하여 엑시톤-폴라리톤을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을 공진 광펌핑이라고 한다. 반면에 이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의 레이저를 주사하면 반도체 내부에 전자와 양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전자와 양공이 반도체 내부에서 에너지 완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광자와 결합하여 엑시톤-폴라리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비공진 광펌핑이라고 한다

양자 소용돌이: 저온에서 양자역학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유체를 양자 유체라고 하는데 초유체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임의의 속도로 회전할 수 있는 일반적인 유체와 달리 양자 유체는 정해진 속도로 회전할 때(유체를 기술하는 파동의 위상이 어떤 점을 둘러싼 폐곡선을 따라 2π의 정수배를 이룰 때)에만 그 점을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회전할 수 있다. 이처럼 양자화된 불연속적인 조건을 만족하여야만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을 양자 소용돌이라고 한다. 엑시톤-폴라리톤 응축도 초유체의 특성을 띄는데, 그 중 하나가 소용돌이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양자 시뮬레이터: 많은 자연현상과 첨단 물리학의 문제에서 양자역학적인 모델이 복잡하고 대규모이기 때문에 정확히 풀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런 모델에 상응하는 간단하고 제어 가능한 양자역학적인 시스템을 구현하여 그 모델의 해답을 유추하거나, 해답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양자 시뮬레이터라고 한다. 현재까지 극저온 원자, 핵스핀, 초전도회로, 반도체 스핀, 엑시톤-폴라리톤 등의 다양한 물질들이 양자 시뮬레이터에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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