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효율 100%인 정보 엔진 구현 성공
이슈) 효율 100%인 정보 엔진 구현 성공
  • 정한영 기자
  • 승인 2018.01.2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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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의 도깨비, 열역학 제2법칙의 이론적 한계점 도달…이론과 실험 모두 증명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법칙은 ‘자유에너지의 감소보다 더 많이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정보를 고려하면 엔진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시스템의 자유에너지의 감소와 사용가능한 정보를 더한 양보다 작거나 같다”는 법칙에 따른다.

이 법칙은 2008년 이론적으로 증명됐다. 지금까지 보고된 정보를 일로 전환하는 장치인 정보 엔진(information engine)들 중 최고 효율은 전자(electron)을 이용한 실험으로 75%를 달성한 바 있다. 

좌로부터 고빈드 파네루 연구위원, 박혁규 연구위원, 츠비 틀루스티(사진:UNIST)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김두철)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박혁규 연구위원(UNIST 자연과학부 교수)이 이끄는 연구진이 그동안 불가능했던 효율 100%의 정보 엔진을 구현한 것이다. 전통적인 열역학 법칙을 깨는 정보 엔진은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정보를 일로 전환한다’는 새로운 틀에서 완전한 효율을 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보 엔진은 ‘맥스웰의 도깨비’라는 물리학 개념에서 출발했다. 맥스웰의 도깨비는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Entropy)는 감소하지 않는다’를 시험하기 위해 맥스웰이 고안한 사고실험이다. 어떤 가상의 존재(도깨비)가 온도가 같은 두 방 사이에 앉아, 두 방문 사이에 오가는 기체 분자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다고 가정한다.

<맥스웰의 도깨비 개념도>맥스웰의 사고실험, 맥스웰의 도깨비맥스웰의 사고실험에 등장하는 도깨비. 방 A, B 사이에서 작은 문을 잡고 있다가, 빠른 기체 분자와 느린 기체분자를 선별해 반대편으로 통과시킨다. 방 A에서 평균 속도보다 약간 느린 분자가 오면, 문을 열어 B로 보낸다. 반대로 방 B에서 평균 속도보다 약간 빠른 분자가 오면, 문을 열어 A로 보내준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방 A는 빠른 기체분자로 채워져 온도가 높아지고, B는 느린 분자로 채워져 온도가 낮아진다.

이 도깨비는 문을 향해 다가오는 분자가 빠른지 느린지에 따라 문을 여닫는다. 이를 반복해 빠른 기체분자와 느린 분자를 각각 다른 방에 모으면 두 방의 온도가 달라지고 결국 엔트로피가 감소한다.

참고) 엔트로피(entropy): 계의 무질서도를 의미한다. 따뜻한 커피를 잡고 있는 차가운 손을 예로 들면, 이는 각각이 다른 온도에 있으므로 어느 정도가 질서가 있는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 손과 커피는 같은 온도에 도달하므로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그러나 역으로 커피가 뜨거워지고 손이 더 차가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우주의 모든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을 따른다.  

전통적으로 엔진이 바꿀 수 있는 일의 양은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제한됐다. 그러나 맥스웰 도깨비가 제안된 후, 과학자들은 도깨비가 분자의 위치와 속도‘정보’를 온도 차를 만드는 ‘일’로 바꾼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열역학 제2법칙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정보 엔진의 개념이 등장했다. 정보 엔진은 맥스웰의 도깨비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이용하는 원리다.

<정보 엔진의 입자 위치 측정과 피드백>(a) 입자의 위치가 L기준선보다 왼쪽일 때, 아무 변화가 없다. (b) 입자 위치가 L기준선보다 오른쪽(회색 영역)에 들어가면, 레이저 빛의 위치를 2L만큼 오른쪽으로 옮긴다. 높은 위치에너지를 가지던 입자는 레이저 빛의 위치가 옮겨지면 낮은 위치에너지 상태로 가라앉는다. 옮겨진 레이저 빛의 중심인 2L 부근에서 브라운 운동을 하고, 결과적으로 입자는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자연스럽게 정보를 고려해 열역학 제2법칙이 새롭게 수정됐고, 최근에 과학자들은 실제로 정보 엔진을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정보 엔진의 효율을 높이려 계속 시도했으나 이전까지는 최대 75%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효율 100%의 정보 엔진을 실현했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정보를 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주어진 온도에서 무작위한 방향으로 브라운운동을 하는 작은 입자를 레이저 집게로 가두고, 입자가 오른쪽으로 치우칠 때마다 레이저를 아주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이를 반복하면 무작위 방향으로 운동하던 입자들을 밀지 않고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입자의 위치 정보를 이용해 오른쪽으로 입자들을 옮긴 것으로 입자의 위치 정보는 측정 레이저로 파악한다. 측정 레이저가 위치 정보를 측정하면 이를 연결된 컴퓨터가 판별하고 입자를 가둔 레이저 집게를 옮기는 순서다.

이 시스템은 1nm(나노미터, 1nm = 10억분의 1m) 단위로 입자 위치를 감지하고, 측정한 순간부터 20 마이크로 초(μ, 100만 분의 1초) 이내에 레이저를 이동한다. 정보를 수 나노미터, 수십 마이크로 초 단위의 정확도로 다룬 것이다.

제1 저자인 고빈드 파네루 연구위원은 “정보 엔진이 정보를 낭비하지 않는 이유는 입자 위치를 파악하고 레이저로 피드백을 주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이상적인 수준으로 정확하고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의 정보 엔진 실험 시스템과 맥스웰의 도깨비 비교>완전한 맥스웰의 도깨비를 실험실에서 구현한 이번 연구를 전통적인 맥스웰의 도깨비와 비교한 모식도. 컴퓨터는 입자의 위치 정보를 읽고, 판별해 광학집게 위치를 조절(피드백) 한다. 맥스웰의 도깨비는 분자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하고, 조건에 맞으면 문을 연(피드백)다. 연구진의 실험에서는 도깨비가 컴퓨터인 셈이다. 연구진이 구현한 정보 엔진은 정보를 모두 일로 전환하는데 낭비가 없어 효율 100%를 달성할 수 있다.

맥스웰의 사고실험에 이번 연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맥스웰의 도깨비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하고 빠른지 느린지 판별한 다음, 가운데 있는 문을 연다. 연구진의 실험에서는 입자 위치를 컴퓨터가 측정, 판별해 조건에 맞으면 레이저를 이동시킨다. 컴퓨터가 이 실험의 도깨비 역할을 한 셈이다.

연구를 이끈 박혁규 연구위원은 “정보에서 일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건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 증명된 바 있으나 실제 정보 엔진의 효율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양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본 연구는 이용가능한 정보를 100% 일로 변환한 엔진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전통적 엔진과 브라운 엔진, 새로운 개념의 정보 엔진> 엔진은 에너지를 일로 전환한다. 그림 (A)는 가장 대표적인 엔진인 자동차의 엔진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흡입/압축/폭발/배기’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피스톤 운동으로 바퀴를 굴린다. 연구진의 정보 엔진도 자동차 엔진처럼 주기적으로 작동한다. 그림 (B)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고안한 래칫 기어로 브라운 엔진의 일종이다. 파란색 바람개비에 브라운 운동하는 기체가 부딪치면 기어는 충분히 가벼워 이 충돌만으로도 회전하는 원리다. 초록색의 부품은 래칫기어를 한 방향으로만 돌아가게 만들어 한 방향의 일만 뽑아낸다. 그림 (C)는 연구진이 고안한 정보 엔진의 모습이다. ‘측정-피드백-완화’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입자들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킨다.

또한 “이번 연구로 정보를 이용한 열 엔진의 실현이 앞당겨질 수도 있으며 이 원리를 이용한다면 나노로봇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연구결과는 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의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IF=8.462)에 1월 12일 금요일(현지시간)에 출간됐다. (논문명:Lossless Brownian information en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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